코로나19 발 금융시장의 패닉으로 인한 비트코인 가격의 단기적 등락과는 상관없이 개방형 블록체인(=암호화폐가 있는 블록체인)의 확산이 조금 더 앞당겨진 느낌입니다. 현존하는 유일 시스템인 ‘달러 중심의 기존 금융 인트라넷(은행망)’에 대한 대안을 찾는 이들이 늘어나고, 그 대안으로써 ‘암호화폐 중심의 금융 인터넷(블록체인)’이 보다 많은 이들에게 각광을 받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번 포스트에서는 제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에 대해서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코로나19 사태는 2008년 “‘금융’ 위기”와는 다른 “‘실물 경제’의 위기”입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사람들이 소비를 하지 않고, 여행을 가지 않고, 공장에 출근하지 않으며, 비즈니스 협상이 진행되지 않고 정치적 혹은 사회적인 행사들이 취소되어 실물경제의 총 수요와 공급이 줄어들며 실물과 금융과의 괴리가 심화되는 데서 발생하는 위기입니다.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 가능성으로 인한 금융시장 패닉의 배경은 실제로 2008년 금융위기가 제공했습니다. 2008년 금융위기는 실물경제가 금융위기를 유발한 것이 아닌, 금융의 위기가 실물의 위기를 유발하는 상황이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금융의 ‘매개체’는 ‘돈’, 그리고 ‘돈’이 돌아다니는 ‘그릇’은 ‘은행망’이라고 불리는 ‘인트라넷’이었는데, 그 인트라넷에서 ‘노드 역할’을 하는 은행들이 빚을 끌어서 제로섬 게임을 했고, 리만브라더스나 베어스턴스와 같이 잘 못 베팅한 은행들이 파산을 해버리자 ‘금융 인트라넷’ 전체가 신용경색으로 마비되어버리는 초유의 상황이었습니다. 은행망이 마비되면 실물경제도 마비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에 세계의 경제를 구하기 위해서 미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찍어 지급불능 위기에 있는 은행들에게 꽂아주는 방식으로 금융시스템 붕괴를 막은 것입니다. 결국 각국 정부들은 2010년대에 빚을 내고 양적완화를 해서 문제를 덮었는데, 결과적으로 금융시장에 풀린 그 돈이 금융자산에 흘러들어가 엄청난 가격 거품이 끼게 된 것이 이번 사태의 배경을 제공한 것입니다.
지금의 금융자산가격은 실물경제가 시속 200km의 속도로 돌아간다고 했을 때에 정합성이 있는 수준(상식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수준)이라고 사료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실제 경제가 시속 50–80km 정도로 밖에 돌아가지 않는 상황이었다는 것에 있습니다. 안 그래도 모든 사람들이 자산 가격 대비 이건 뭔가 이상하다고 느낄 때에 코로나19 사태가 발생하면서 경제가 돌아가는 속도가 30km로 떨어져 버렸습니다. 120km의 차이 정도는 뭐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들이 잘 대응해줄 것 같고 또 이 문제를 끄집어내서 실물경제와 금융자산 가격과의 괴리를 없애는 것이 모든 사람에게 도움이 되지 않다 보니 애써 무시하고 있는 상황에서 갑자기 170km나 차이가 나기 시작하니 금융시장이 패닉을 하면서 시속 200km짜리의 금융자산들을 팔아치워 버리는 것입니다. 즉, 이번 사태의 본질은 2008년과 반대로 실물경제의 둔화가 금융시장의 패닉을 유발하는 것입니다.
이번에도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돈을 찍고 빚을 내지 않으면 시속 30km의 속도를 버틸 수 없는 기업들은 도산할 것입니다. 기업들이 도산을 하면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어서 가계의 소득은 떨어지고 국가의 세수는 줄어서 총수요는 더욱 위축될 것입니다. 도산을 막기 위해서는 빚이 더욱 심각하게 쌓이더라도 돈을 푸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돈을 풀고 빚을 내는 방식은 실제 생산성에 기여를 하는 행위가 아니기에 병자에게 모르핀을 투약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차이가 없습니다. 돈을 풀어서 기업의 부도를 막고 금융자산 가격을 떠받들게 되면 실물경제와의 괴리는 더욱더 커질 것입니다. 공정 시장의 수급에 의해서 자본이 배분되는 것이 아니기에 정치적인 갈등은 더욱더 심화될 것입니다. 미국과 같이 돈을 마음대로 찍어낼 수 있고 국가부채도 감당할 수 있는 (금번 사태에서 가장 예후가 좋을 수밖에 없는) 초강대국의 경우에도 양적완화에 따른 자국 내 정치적인 갈등과 실물경제와 금융자산과의 괴리로 인하여 금융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위기”를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돈은 찍어내지는 못 하지만 국가부채는 감당할 수 있는 나라의 경우는 미국보다 훨씬 불안할 것입니다. 기본적인 경제의 총수요와 공급에 차질이 있는 상황에서 자본시장은 ‘안전한 달러’로 흘러들어가지 ‘덜 안전한 원화’로 흘러들어가지 않을 것입니다. 신뢰의 위기가 온다는 뜻은 마치 ‘불패신화’를 믿고 공격적인 투자를 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모두 한 순간에 정신을 차린 후에 안전자산으로 몰려가는 현상을 수반합니다. 비유를 하자면 ‘블록체인의 가능성을 믿고 ICO에 장기 투자하려던 사람들’도 2018년 초 “블록체인이 실생활에 쓰이지 않는데 반해 시장이 너무 과열되었다”는 스토리가 시장에 퍼지자 보유하고 있던 알트코인을 전부 대장주인 비트코인으로 바꾸며 비트코인 대비 알트코인의 가치가 떨어지고 자금 유입이 끊기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나라는 역시 돈도 마음대로 찍어내지 못하고 국가부채도 감당할 수 없는 빚 많은 개도국들입니다. 그러한 나라의 경우는 IMF 구제 금융 수순을 밟던지, 아니면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서 자국 통화를 찍어내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는 혼란을 겪게 될 것입니다. 1997년 금융위기 때 한국은 IMF 구제 금융을 통해서 비반해교적 빠르게 원화 가치를 안정화 시킬 수 있었는데 그 이유는 당시 한국 실물경제의 펀더멘털이 튼튼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경제의 하부구조가 취약한 남미 국가들의 경우 구제금융에도 통화안정화를 이루지 못 한 사례가 많습니다. 아르헨티나의 경우 2018년 대규모의 구제 금융에도 2019년 물가상승률 50% 이상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경험하였습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된다면 이는 곧 실물경제의 위기이기에 보다 많은 ‘아르헨티나’들이 생길 것이라 예상됩니다. 아르헨티나 ‘금융인트라넷의 코인’인 ‘페소’ 가치는 폭락하고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가치저장과 경제적 자유를 위해서 비트코인으로 몰려드는 상황이 다른 개도국들 사이에서도 발생할 것으로 보입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전이 된다고 가정했을 때 이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긴밀한 국제공조가 유일해 보이지만, 국가 간 무역전쟁과 각자도생의 풍조가 이를 어렵게 만들 수 있습니다. 국제공조가 유일한 해답인 이유는 세계경제가 너무도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코로나19가 가장 심하게 전파된 남부 유럽의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남부 유럽은 경제에서 관광 비중이 매우 높은 지역입니다. 스페인의 경우는 GDP의 1/10이 관광입니다. 올해 남부 유럽에 관광 가시는 분들은 손에 꼽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 나라들 정부 입장에서는 지역 경제기반 자체가 무너지지 않게 하기 위해서 관광 관련 인프라 기업들을 살려야 합니다. 돈을 찍어서라도 숙박업, 운송업체들이 생존할 수 있게 해줘야합니다. 그런데 남유럽 국가들은 안 그래도 적자이며 부채비율도 높은 나라입니다. 게다가 통화는 유로입니다. 유로를 찍어내면 그 부담은 독일 및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지게 됩니다. 안그래도 그러한 정치적 갈등 때문에 브렉싯(Brexit)도 생기고 유럽 각국에서 독립주의 정당도 나오는 판에 남부 유럽 국가들을 돕는 결정을 하기는 쉽지 않을 듯합니다. 그런데 만약에 남부 유럽 국가들이 자국민들의 경제적인 이유를 위해서 유로에서 독립하면 결국 독일은 자국산 자동차를 지금과 같이 많이 팔 수있는 시장이 없어집니다.
석유값도 연결되어있습니다. 남부 유럽 입장에서는 석유값이 계속 떨어지는 것이 그나마 나을 듯 합니다. 유가가 낮아서 교통비용이 그래도 저렴하면 조금 사태가 진정된 후에는 유가가 높을 때보다는 많은 관광객들이 비행기를 타고 이탈리아, 스페인으로 올 것입니다. 그런데 만약 지금과 같이 석유값이 떨어지면 미국의 셰일 유전들은 기껏 땅을 뚫어서 생산해 놓은 석유를 팔지 못 해서 파산하게 됩니다. 석유 생산단가가 셰일보다 저렴한 중동 산유국에서 석유 생산량을 줄여줘야지 미국 셰일 업체들이 도산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러시아는 수출품목 중에 석유, 가스의 비율이 70%를 육박합니다. 갑작스러운 감산은 자국 경제에 큰 부담일 뿐만 아니라 러시아에 입장에서는 장기적으로 미국의 셰일 업체들의 도산이 자국 경제에 유리할 수 있습니다.
이상적인 대처법은 각국이 서로 공조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논의하며, 석유의 생산량과 유통을 통제하며 가격의 등락을 조절하는 와중에 절대로 무너져서는 안 되는 자국의 핵심 기업들에게 자금을 지원해주며 경제가 원상태로 회복했을 때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의 원유 감산에 대한 거부에 따라 중동 산유국들이 생산 증대 노선을 천명한 것에서 보셨듯이 너무도 복잡하고 각박하게 엮여 있는 세계경제 환경에서 국제공조보다는 자국 이익 극대화를 위한 죄수의 딜레마 상황이 연출되기가 매우 쉽습니다. 결국 이렇게도 민감한 상황에서 공조를 이끌어 내기 위해서는 각국 정상들의 전 지구적 차원의 리더십이 어느때보다도 필요한데, 최근 국제 정치환경은 이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미국, 중국, 러시아 등 글로벌 강대국들의 리더들은 모두 자국우선주의를 내세우고 있습니다. 자국우선주의 노선에 지지를 받고 이를 통해 자국 국민들의 살림살이가 나아졌다는 명분으로 권력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그 노선을 버렸다가 자칫 잘 못 하면 선거에서 떨어지거나 독재국가의 경우 정적들에 의하여 추방될 수도 있습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자국우선주의로 모든 나라들이 각자도생하는 구도에서 가장 취약한 것은 빚 많은 개도국들입니다. 만약에 수많은 개도국들의 경제가 망가진다고 하면 결국은 미국과 달러 시스템도 도전을 받을 것입니다. 나의 집이 으리으리한 고급 저택이라도 집 주변이 전부 오물로 둘러싸여 있으면 아무리 하이힐을 신고 집 밖을 나간들 그 집은 더 이상 살기 좋은 집이라고 하기 어렵습니다.
위와 같은 시나리오에서 미국과 교역을 하는 나라의 통화가치가 전부 절하된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러면 미국의 물가는 하방압력을 받을 것입니다. 세계경제대공황과 일본의 장기침체를 목도한 경제학자와 중앙은행이 가장 무서워하는 바로 그 디플레이션입니다. 디플레이션 압력이 생기면 돈이 돌지 않기 때문에 미국 연방준비위원회는 또다시 돈을 찍어낼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찍어낸 돈은 미국의 금융자산의 가격을 더욱 띄울 것이고 그렇게 되면 미국 내부의 정치적 갈등은 심화될 것입니다. 지난 10년과 같이 실물 경제는 가격 변동이 없으나 자산 가격만 부양되는 역진적인 현상이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정치적 갈등을 유발했는데, 이와 반대의 선택지는 없어보입니다. 코로나19 경제충격의 시작은 실물에서 금융으로 확산되었지만, 금융자본주의 체제에서 금융의 충격은 실물에 더욱 큰 악영향을 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갈등과 경제적 혼란이 더욱 심화되면 될 수록 달러화에 대한 컨피던스는 전세계적으로 떨어질 것입니다. 만일 설상가상으로 미국의 주 교역국 에서 (경제위기로 인한 사회 혼란이건 코로나19로 인한 공급망 차질이건) 아주 중요한 생필품에 공급차질이 생기는 경우를 상상해봅시다. 이러한 경우에는 인플레이션이 발생해도 고용효과가 없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항상 그래왔듯, 달러의 실질가치가 하락하는 상황에서는 미국인들도 “달러 인트라넷” 밖에 있는 금이나 비트코인과 같은 대체자산을 찾게 될 확률이 높습니다.
결국 코로나19 사태의 장기화는 ‘비트코인과 금융 인터넷’의 부상을 촉진시키는 역할을 할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시스템에 대한 변화는 결국 시스템의 문제에 대중이 눈을 뜨게 되면서 일어납니다. 기술이건 역병이건 크고 작은 외부 충격으로 시작이 된 위기가 계기가 되어 대중들은 기존 금융 시스템의 모순들을 여실히 자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금융 시스템에서 가장 취약한 하부 구조부터 하나둘씩 무너져가면서 시스템 붕괴에 가장 고통받는 사람들부터 대체자산을 찾는 투자자까지 하나둘씩 ‘금융 인트라넷’의 대안을 찾을 것입니다. 과거의 대안은 금이었지만, 금본위는 과거의 기술입니다. 블록체인은 대중의 컨센서스 그 자체입니다. 인터넷만 연결되면 누구든 참여할 수 있습니다. 온라인에서 거의 자동화된 방식으로 이뤄지는 불특정 다수의 컨센서스를 기반으로 시민이 원하는 금융 시스템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블록체인 법학회 소속 모 판사님께서 하신 말씀과 같이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은 힘없는 개인이 거대 시스템의 모순에 대항할 수 있는 선택권을 부여합니다.”
고팍스를 운영하는 스트리미는 블록체인 금융인프라를 만드는 회사입니다. 기존 시스템의 은행망 인프라와 비교하면 황무지와 같은 블록체인 인프라를 대중이 사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발전시키고, 건강한 제도화를 위해서 다양한 이해당사자들과 소통하는 일들을 지난 5년간 해 왔습니다. 제도권의 눈은 (너무도 당연히) 곱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희는 정말 힘든 환경 속에서 지금까지 그 지향을 위해서 너무도 많은 고생을 감내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19 사태발 경제 충격을 보며 죄악시하던 ‘암호화폐가 있는 블록체인’을 달리 보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을 기대합니다. 한국인과 한국 사회는 암호화폐와 블록체인이라는 ‘외부적인 기술 충격’도 국가의 저력을 높이는 기회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터넷이 미디어 환경을 변화시키며 한국인들은 IT기술을 이용해서 30년밖에 안된 한국의 민주주의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만들었습니다. 암호화폐가 금융환경을 변화시키며 한국인들은 블록체인 기술을 이용해 한국의 경제 체제를 보다 자유롭고 공정하게 만들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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